[CBC뉴스|CBC NEWS] 만약 당신이 수십 또는 수백 페이지 분량의 번역물을 방금 받았고 그것을 일정 시간 내에 완성해야 한다고 가정해보자. 당신은 제일 먼저 무엇을 할 것인가?
아마 먼저 사전을 준비하여 옆에 두고 지체 없이 1페이지를 펴서 첫 문장부터 번역을 시작해 나갈 것이다. 하지만 과연 이것이 가장 빠른 시일 내에 주어진 작업을 완성해 낼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일까?
번역가가 텍스트 속에서 어떤 단어나 표현을 접할 때는 그것이 속한 문장 자체 혹은 그와 인접한 문맥 안에서만 의미를 해석하고 추론하게 되는데, 이 하나하나의 단어와 문장들은 글 전체의 맥락 속에서 보면 그 의미가 달라지거나 때로는 전혀 새로운 의미를 띄게 되기도 한다.
이런 이유로 전체 글의 흐름을 먼저 파악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하게 되는 번역은 나중에 읽었을 때 자연스럽거나 매끄럽지 못하게 되고, 글쓴이가 실제로 독자에게 말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의 전달도 실패할 수 있다.
그러므로 번역가는 텍스트의 첫 문장부터 하나씩 바로 번역에 들어가기보다 먼저 텍스트의 전문을 읽음으로써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전체적인 그림을 우선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.
그래야 번역을 시작하기 전에 어떤 관점에서 내용을 묘사해 나갈지 그 방향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. 숲 속에 있는 하나하나의 나무는 그 숲 안에 있는 다른 여러 나무들, 생물들, 자연과 끊임없이 교류하고 그 관계 속에서 영향을 받아 새로운 의미를 부여 받듯이 번역가가 접하는 개개의 단어와 구문 문장들도 전체 글의 흐름 속에서만이 그 정확한 의미가 결정된다.
이렇듯 전체로서의 숲을 먼저 머릿속에 그린 후 번역을 시작해 나간다면 작업 중간에 혹은 작업이 거의 끝날 무렵에 앞서 번역했던 개별 문장들을 다시 수정하기 위해 돌아가야 하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전체 번역에 걸리는 시간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.
[콩코디아 통번역 연구학회 조교수 Emma Lee]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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